세이프게임
“제 9화
1권
이 가증스런 여자가 또 속을 뒤집는다.
서큐버스 퀸으로서 자부심을 걸고 자신이 가장 먼저라고 살금살금 달라붙더니 이제 아예 자신의 수박처럼 풍만한 가슴을 뒤에서 내 머리 위에 살짝 올려놓고 목을 양손으로 감은 채 히죽거리고 있다.
내가 그것을 가장 좋아했던 것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가증스런 것이지만 과거의 인연 때문에 차마 마계로 날려버리지 못하고 있다.
결코 머리 위의 몽실몽실한 좋은 느낌 때문이 아니다.
“닥쳐-! 난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생존마탑 안에서 확장작업을 마무리하기 전에 살짝 밖을 본 나는 경지에 든 이후 처음으로 사례가 걸릴 뻔 했다.
말이 좋아 10억 명이지 끝이 안 보이는 숫자다.
게다가 저것들은 하나하나가 산맥 밖에 나가면 최소 5서클이하는 상대가 가능한 초인 급의 고대의 종족들이다.
그런 것들이 10억 명이 모여서 나 하나만 노리고 말없이 시퍼렇게 살기를 피우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수준여부를 떠나서 끔찍할 따름이다.

저런 증오 때문에 정순한 마기가 모인 이곳에서 무한의 마력을 지원받을 수 있는 내 스승과 나조차 생명의 위협을 안 받으며 산 적이 없다.
안정기 1달간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중립지역에서 마계에 날려지는 위험을 감수한 채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
이곳이라면 엔트리파워볼 거의 8서클 이상의 반신 급의 위력을 내는 7서클의 흑마도사 2명이 그 꼴이었다.
저 중 제일 지독한 것은 저 하이엘프 퀸 5명이다.
외모야 절세의 미녀지만 완전히 미친개들이다.
‘우리를 죽이겠다고 정말 수단방법을 안 가리더라.’ 특히 저 빨간 레드 하이엘프 퀸은 정령왕과 합신해서 이종족에게 치명적이 독이 되는 마기로 가득한 중립지역까지 뛰어 들어왔다.
잠시 방심한 내 스승의 방어막을 꿰뚫고 심장까지 도려내었다.
자신조차 마기에 오염되어 몸이 줄줄 녹아내리려 하는데 정말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내가 마계로 날려버리려고 EOS파워볼 하자 같이 죽자고 녹아가는 몸으로 달려드는데 정말 소름이 끼쳤었다.
가까스로 공동 밖으로 마력포로 날려버렸지만 며칠 후에 또 뛰어 들어오려 했었다.
아예 접근만 하면 마계로 보낼 준비를 하니까 외부에서 불의 정령왕의 권능인 용암덩어리를 쉴 새 없이 중립지역 안으로 쏟아 부었다.
그것을 보고 다른 하이엘프 퀸도 펄펄 끓는 물이라던 작은 산만한 바위라던가 폭발하는 번개 덩어리를 중립지역으로 던졌는데 그것을 1달간 피하느라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다행히 목은 안 잘려서 살아있던 내 스승님은 심장복원으로 되살아난 이후 레드 하이엘프 퀸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셨다.
근원학파의 흑마도사로서 평생 전쟁터를 굴렀지만 저런 미친년은 처음 본다고 혀를 차면서 말이다.

볼 때마다 로투스바카라 자신의 심장을 가리고 슬금슬금 뒷걸음치시다 경계선을 넘어 마계로 날려질 뻔 한 적도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참 아픈 추억이다.
“잊자. 상대를 안 하는 것이 최선이다.” 깔끔하게 과거를 정리하고 그들을 외면했다.
은거할 생각을 하니 정말 저 살벌한 것들하고 사생결단을 내려 했는지 새삼 부끄러워졌다.
어떤 미친놈이 엘프를 평화로운 종족이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저 무식한 오크들조차 하이엘프들의 살벌한 투기에 기가 죽어 있는 것을 보면 한참 잘못된 상식이다.
그리고 드디어 안정기에 들어간다.
마기의 안정화에 따라 로투스홀짝 대공동 중앙을 제외하고는 마력이 안정화되고 마법이 사용가능해졌다.
그러자 엄청난 굉음과 날개소리가 들리며 용족들이 몰려왔다.
작은 개체가 100미터를 능가하는 거대한 용들이 시커멓게 하늘을 뒤덮어 간다.
‘용족은 겨우 1만 마리 정도네. 참 다행이다.’ 여기서는 기본이 억 단위로 보니 수가 무척 적어 보인다.
그래도 중간계에서 성룡급 이상은 다 몰려온 모양인데 1만 마리라니 역시 용족은 소수부족이다.
100만 이상은 되어야 부족 취급이라도 해줄 텐데 저렇게 적으면 종족조차 보존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용족들이 오픈홀덤 얼마나 분노했는지 길길이 날뛰면서 브레스를 품거나 고함을 치면서 날아오고 있었다.
“마왕의 본신소환이라고? 저 미친 사악한 흑마도사를 심판하라.” “중간계를 파멸로 이끄는 자여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영구토록 저주받을 것이다.”
괜히 걱정해 주었다는 후회와 갑자기 스승님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그래도 흑마도사라고 같이 욕먹을 때는 좀 나았는데 혼자 들으니 더 외롭네. 언제 내가 칭찬받고 살았나? 일이나 하자.’ 어떻게든 리치가 되시도록 설득할 걸 그랬다.
가벼운 후회를 하면서 마도를 발동한다.
우우우웅!
흑마탑 위에 검은 로브를 입은 인영이 나타났다.
집중되어 유형화된 검은 마기가 물위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동심원처럼 퍼져나갔다.
흑마도사가 보이는 압도적인 마력이 대수림의 마기조차 밀어내는 광경에 분노에 미쳐 날아오던 용족조차 잠시 공중에 멈출 정도였다.
의문이 떠오를 정도였다.
‘어떻게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마력이 유형화되어 공기조차 밀어낼 정도가 되는가?’ 그 대답이 여기 있다.
끝없이 광대한 마력을 모으고 압축을 거듭하여 결국 인간을 초월한 마도사가 저기 있는 것이다.
검은 로브의 위에서 빛나는 10개의 원이 눈에 아프게 박혀온다.
하이엘프 퀸들의 꽉 깨 물은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왔고 자신들의 잘못을 자책했다.
‘처음 저 사악한 인간족의 마도사가 공동에 침입할 때 모든 힘을 기울여 제거해야 했다.’ 마기에 접근하지 못하니 안정기만을 기다리다 위기를 초래했다.
처음 안정기에서 7서클일 때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제거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안정기라도 잔존하는 일부의 마기와 차원장벽 때문에 결정타를 먹이지 못한 후회가 끝없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멸족을 각오하더라도 반드시 죽인다면서 이를 가는 하이엘프 퀸들 이었다.
대공동의 공기를 마력으로 밀어내며 검은 마탑이 종처럼 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 흑마도사는 오만하게 10억의 군세와 1만의 용족들 앞에서 선언했다.
“근원학파의 종주로서 명하노라. 지금 나 여기 홀로 존재하니 따를지어다.” 검은 마탑의 광채가 더욱 빛을 발하며 흑마법사의 선언을 대수림에 울려 퍼지게 했다.
‘감히 흑마도사 주제에-!’
지극히 오만한 선언에 끝장을 보자라는 공통된 생각을 공유하며 하이엘프 퀸들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진다.
그리고 머리 위에는 정령왕들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며 마탑에 접근한다.
자신들의 여왕의 전진에 다른 하이엘프들도 각자 자신의 무기와 정령을 드러내며 걷기 시작했다.
모든 하이엘프들이 검과 창과 활과 방패를 손잡이를 꽉 쥐고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오크들도 투기서린 함성이 장내에 울린다.
흥분과 주술에 의해 근육이 터질듯이 부푼 오크 대전사들이 발을 맞춰 전진하기 시작한다.
감정을 주체 못하고 흥분하여 내달리는 미숙한 오크는 이미 대수림에 먹혀 사라졌다.
여기 남은 오크들은 마족과의 투쟁으로 극도로 진화한 십억의 하이엘프들과 영겁의 세월을 맞서 싸워 살아남은 진정한 오크로드들이었다.
대산맥 밖에서라면 단 하나만 나타나도 오크를 결집하여 왕국을 뒤흔들 오크로드들이다.
그런 최정예 10만이 발걸음조차 맞출 정도로 완전히 집단으로 변화시켰다.
여기에 자기최면을 통해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게 하는 고함소리가 공동을 메워나간다.
상체는 인간, 하체는 뱀인 나가의 집단주술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1억 이상의 나가가 부르는 주술의 주체는 과거 그 거체로 바다를 메우고 해를 집어삼켰다는 고대의 뱀신이었다.
나가는 모두 뱀신의 후예였고 빙의 주술에 의해 일시적으로 신력을 발휘한다.
고대의 뱀신에게 빙의된 나가의 몸이 수십 배로 부풀어 오르고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법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수림에서 그들은 이 주술로서 대부분의 허공과 습지를 차지했다.
용족에 미치지 못하나 거대한 거체와 하늘을 날아다니며 물을 수족처럼 다루는 그들은 대수림에서는 무적이었다.
허나 블루 하이엘프 퀸이 물의 정령왕과 합신하여 반경 100km지역의 모든 물을 통제하면서 번영은 끝났다.
강철보다 강한 비늘갑옷도 하이엘프들의 정령화살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려 패배를 거듭했다.
그 후 치욕스럽게도 오크들과 같이 숲 외부로 밀려나 서로 연합하여 싸워왔다.
나무 위에서 공격에 속수무책인 하이오크들의 공중을 보호해주면서 말이다.
드워프들 역시 금속골램과 기묘한 무기들을 앞세우고 전진하기 시작한다.
성을 부수는 공성병기급의 거대 골램만 수만 기를 동원했다.
대수림 전투의 서막은 이렇게 흑마법사의 도발적인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허나 흑마도사로서는 오해라고 외치고 싶었다.
‘무엇인가 오해를 산 것 같은데. 마탑을 변화시키기 위한 인증 영창인데 말이야. 정말 울고 싶다. 빨리 끝내고 문 닫아야지.’ 흑마도사는 빨리 생존마탑 확장을 완료하기 위해 마법영창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도발이 되어 이제 살기가 아니라 무표정으로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하이엘프 퀸들의 곱상한 얼굴을 보니 솜털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뭘 잘못했냐고? 살자고 발악한 게 죄냐?’ “과연 주인님은 멋져요. 다시 한 번 반하겠어요.” 마탑의 안에서 들려온 아양이 잔뜩 실린 말에 인증마법이 실패 할 뻔 했다.
‘언제 저 서큐버스 퀸도 마계 끝으로 날려 버리고 말겠다.’ 그래도 생존마탑의 확장은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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